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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초3동천재소년


니체,『안티크리스트』읽기 - 제 15절 '망상?' 『안티크리스트』읽기

그리스도교에서는 도덕과 종교가 어떤 점에서도 현실과 접촉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들에는 순전히 공상적인 원인(‘’ ‘영혼’ ‘’자아’ ‘정신’ ‘자유의지’ – 혹은 자유롭지 않은 의지도포함하여)과 순전히 공상적인 결과(‘’ ‘구제’ ‘은총’ ‘’ ‘죄 사함’)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공상적인 존재들(‘’ ‘정신’ ‘영혼’) 사이의 교제. 공상적인 자연과학(인간중심적이며, 자연적 원인이란 개념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는), 공상적인 심리학(‘후회’ ‘양심의 가책’ ‘악마의 유혹’ ‘신의임재등과 같은 종교적이고 도덕적 특질을 가진 기호언어의 도움을 받아 쾌감과 불쾌감이라는 일반적인감정, 이를테면 교감신경의 여러 상태를 스스로 오해하면서 해석하는 것일 뿐인), 공상적인 목적론(‘신의 나라’ ‘최후의 심판’ ‘영생’).

 

스무 살 때 그랬던 적이 있다. 기독교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에게 기독교는 편집증적이라고 말했었다. 그때 나는 아니었지만 그 친구는 물론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혹은 그를 포함한 기독교인 모두를) 환자라고 디스했던 셈이다. 왜 그랬었냐면, 나는 기독교인들이 자기에게 일어난 일들을 해석하는 방식이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도 좀 그렇다.)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게 나를 위해하나님이 (특별히) 허락하신 것이므로 감사해야 하고, 반대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그건 나를 위한하나님의 시련이거나 나를 시험하는악마의 계략이므로 기도해야 하고, 오늘 읽는 성경 말씀은 지금 나를 향한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경건해져야 한다는 식의 해석들이 불편했었다. 그 해석들은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와 결부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의 내가 보기에는 그냥 우연이거나 적어도 그 분들과는 별 상관 없이, 진짜 그냥 일어나는 일들인 것 같았는데 그 분들은 거기서부터도 꿋꿋이 지금 나를 향한하나님의 메시지를 발견해냈다. 그걸 잘 찾아내는 사람(난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했었지만)을 주변에서 영적으로’ ‘민감한사람으로은근 추켜세워주는 분위기도 있었던 것 같다. 민감한사람들이 발견해내는 그것, 보여지고 겪을 수 있는 사건들의 배후에있는 그 하나님의 뜻이란 게 나는 망상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보이지 않으니까! ‘멀쩡한’ 정신(그때 나는 나만 멀쩡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으로는도무지 안 보이는 걸 잘도 찾아내고, 찾아낸 그것들을 진짜로 믿으면서 살아가는 게 이상해 보였다. 편집증이라고 디스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편집증 환자들도 똑같이그렇게, 상상을 통해 만들어낸 걸 진짜로 믿으면서 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병원의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를 싫어한다던가(피해망상), 자기가 슈퍼맨이라고 믿고 진짜로 창문에서 뛰어내린다거나….


위 단락에서 니체의 비판은 기독교의 이런 멘탈을 조금 더 폭넓게 디스한다. 그 때 나는 기독교인들이 사건을 자기중심적으로, 혹은 자기한테 유리한 방식으로해석한다고 생각했고, 그 자기중심성이 싫었던 건데 니체는 그게 공상이라고, 그러니까 ‘사실이 아니라고 디스한다. 기독교인들은 일어나는 사건들로부터 하나님의 안배를 찾아낸다. 문창극이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을 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그러니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그러므로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니까 역사적 사건인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기독교계에서는 접근하는 방식이 글러먹었다고 지적하지만 어쨌든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그는 절대자이므로모든 사건이 그 뜻 안에 있다는 전제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 뜻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갈릴 뿐이다. 그러나 니체는 그 하나님의 뜻이라는 게 공상이라고 지적한다. 자매품인 죄, 은총, 죄사함, 양심의 가책, 악마의 유혹, 신의 임재 등등도 마찬가지로 다 그렇단다. 진짜 있는 것은 쾌감과 불쾌감 같은 마음의 상태일 뿐이며 여기에굳이 신을 개입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사실 이런 지적은 늘 있어왔다. 당장 지금 교회에도 이런얘기 하는 애들 수두룩빽빽이 있다. 지금 교회에서는 그냥 믿음이 부족해서아니면 기도를 덜해서일어나는, 그냥 성가신 개인의 일탈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게 보통인 것 같지만 사실 이 문제는 기독교적 멘탈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소한 일들로부터도 하나님의 뜻을 찾아낼 수 있는 게 좋은 믿음이고, 반대로 사소한일은 그냥 사소할 뿐이며 거기서 하나님을 못 찾아내는 게 부족한 믿음이라면 그 믿음이라는 건 사건의 배후에서 보이지않는 원인-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브리서 11:1)”라는 말은 바로 이를 뜻한다.


따라서 여기까지만 보면 니체를 그냥 믿음 없는 사람’, 그래서 못 보는 사람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비슷한 개인적 일탈들에 대처하는 교회 청년부 리더들이 그렇듯 말이다. 그러나 제 15절의 후반부는 그 대답으로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찝찝함을 남긴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것이 설명된다. 현실을 왜곡하면서 그것으로부터 도망하려고 하는 자는 누구겠는가? 현실로 인해 고통받는 자다. 현실로 인해 고통받는다는 것은 그 현실이 좌절된 현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 쾌감에 대한 불쾌감의 우세가 저 허구적인 도덕과 종교의 원인이다.

 

니체의 분석은 심리적이다. 어떤 말의 옳음과 그름을 넘어서서그 말을 한 사람이 그 말을 왜 했는지를, 그 말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폭로한다. 그러니까 니체적인 접근은, 호빗 총각이 키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했을 때 키가 정말 중요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총각이 그렇게 말했던 이유(, 열폭)를 까발린다. 여기에서도 니체는 같은 방식으로 접근한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믿는 것, 즉 모든 사건의 배후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게 허상이고 기독교 자체가 망상이라면 도대체 그런 걸 왜 만들어 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위 단락에서 니체는 그것이 열폭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별로인 사람들이 현실이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그 불만족스러움 자체는 잠깐이고 그 뒤에 더 나은 미래가 있음을, 그리고 그것을 보증해 주는 사랑의 하나님을 상상해냈다는 게 제 15절에서 니체의 주장이다. 어떻게 보면 『안티크리스트』 전체를 요약하는말이기도 하다.


위에서 바울은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라고 했다. 과연 인간은 현실로부터 바라는 것-아직 존재하지는 않으나 존재했으면 좋겠는 것-들을 본다. 예를 들면 중고딩 자녀를 둔 부모들은 우리 애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 할 것이라고 믿는다. 외로운 총각들은 여자 사람이 조금만 친절하게 대해줘도 내게 마음이 있다고 믿는다. 주변에서는 말도 안 된다고말려도 꿋꿋이 그렇게 믿는 이유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건 네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서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야니체는 아마 이렇게 꾸짖을 것이다. 문제는 이게 기독교 전체에 대한 비판이라는 데 있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혹시 나의 기대가 만들어낸 허상은 아니었을까?


덧글

  • 긁적 2014/07/21 04:36 # 답글

    0. 헐. 좋은 책이긴 한데 아무래도 향정신성(....)이라..;; 중독에 조심하시면서 즐기세요 ㅋㅋ

    1. 제가 좋아하는 방식인 '가치중립적'이라는 걸 도입해서 모든 '망상'이라는 단어를 '공상'으로 대체합니다. 저는 문학적인 혹은 수사적인 맥락을 제외하면 '망상'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맥락에서 사용하는 경우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ㅅ-;;; 이런 단어의 사용을 제가 꺼리는 이유는 단어의 사용이 논증의 결론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물론 포스트에서 지적하신 현상이 교회 내부에 있습니다 -_-;;; 뭐 말만 나오면 하나님의 뜻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솔직히 듣기 짜증나죠. 전 그런 친구들이 눈앞에 있으면 웬만하면 멘탈에 상처 안 나는 수준으로 까주기는 합니다만 증-_-상이 좀 심한 경우는 잘 안되기도 합니다.

    3. 위대하시고 위대하신 니체형님 지적이라 까-_-는 것은 불가능하고. 제 입장에서 가능한 대응은 대강 '기독교의 입장을 저거 보다는 멋지게 만들기'정도가 되겠네요. 사실 이게 니체형님에 대한 제 표준적인 대응입니다. 자세한 건 마무리하면서 다시 정리. (근데 너 임마 니체형님보고 뭐라고 할 실력은 되냐... ㅠ.ㅠ... )

    4. 첫째. 모든 종류의 공상이 다 해로운 것은 아닙니다. 어떤 종류의 비현실적인 공상은 사람에게 현실을 이겨낼 힘을 주죠. 가령 찰리채플린은 자기가 세계 최고의 배우라고 굳건히 믿었다고 들었습니다. 니체가 이야기한 초인 역시 딱히 실존할 법한 인물은 아니죠. '공상'이 단순히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믿음'이라면 니체의 초인은 어떤 의미에서 현실의 반영인 것인지 부가설명이 필요하겠죠.

    5. 둘째.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도 하나의 해법입니다. 지나치게 현실직시를 강조하면 우리 일상 속의 여러 행동들이 다 바보짓이 되요. 가령 누가 말기 암에 걸렸을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너님 말기암임. 3개월 남음.'이라는 말을 해주기 꺼려하죠. 이제 말기암 선고를 받고 괴로워하는 인간에게 '야! 현실을 직시해! 괴로워할 시간에 남은 시간을 어떻게 더 가치있게 보낼지 생각하란 말이야!' -_-;;; 이렇게 말하는 건 좀 이상하죠?? 사람은 다 얼마간은 못났지만 누구나 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잘난 사람으로 봐 주길 바랍니다. 해롭지 않은 수준에서 그 마음에 맞춰주는 게 딱히 나쁜 것은 아니예요.
    간단히 말해. 현실을 직시하기만 한다고 해서 좋은 세상이 오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사실 여기서 '현실을 직시한다'라는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도 엄밀하지 않습니다만 패쓰)

    6. 셋째. 사실 제가 보기에는 니체 역시 위 비판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은데.... 제가 아는 범위에서 니체의 철학은 그냥 "존나 존나 존나 존나 위대해지고 싶다."라는 남성적 욕망의 결과물입니다. ( 아오. 이 말에서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여성이라고 위대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거 아닙니다. 단지 남성들에게서 더 그런 경향이 강하게 또는 자주 발견된다는 이야기지. ) 그래서 저는 니체의 철학이 니체의 고환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ㅋㅋㅋ 그리고 이건 ""디스가 아닙니다"" 칭찬이지.
    그래서 제가 니체형님을 깔 수가 없어요. 무한회귀나 허무에 대한 논변을 들어보면 - 물론 세부적인 논증과정에서는 문제가 많습니다만 - 이 사람이 어떠한 것도 이겨낼 수 있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강한 인간을 원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니체가 기독교인을 보고 '너네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거잖아' 라고 하면 '뭐 그런 거 같네. 그런데 너는 강해지고 싶어하잖아.'라고 하면 되요. 사실 니체가 언제 '기독교인들은 바보 멍청이 똥개닼ㅋㅋ' 이랬습니까. '기독교인들은 고자새끼들이다' 이랬지. 즉, 적어도 니체는 이미 기독인과 자신의 차이가 지능이나 논변의 차이가 아니라 욕망의 차이인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 것으로 보여요. 전 여기가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니체는 고자새끼들을 극딜했습니다만.. 저는 이런 상황에서 그냥 '우리 서로 까지 말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끝까지 달려보아요. 화이팅.' 이러고 끝냅니다. 솔직히 저는 니체가 왜 다른 욕망들 특히 여성들을 그렇게 깠는지 이해가 안가요. 강해지는 방식에는 '내가 강해지는' 방식도 있지만 '같이 강해지는'방식도 있는데 왜 이런 종류의 사항은 고려하지 않고 제일 뛰어난 놈 하나 빼고 다 죽으라는 식으로 나가는지 이해가 안감. 저는 주로 여성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삶의 방식 역시 충분히 재미있고 유익한 부분이 - 물론 같이 일 할 때 짜증나는 분도 많습니다만 - 있다고 보는데 아무리 봐도 니체는 이런 부분을 너무 무시해요.
    뭐 니체는 자기 하고싶은거에 철저하게 충실했고 그 점에서 딱히 까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 방향으로 갈 생각은 없습니다. 아니. 좆도 없는 새끼한테 딸딸이가 뭔 재미가 있겠어요. 안 그럼?

    7. 그래서 '이 좆도 없는 새끼야'라고 까면 '이 좆으로 생각하는 새끼야'라고 지나가고 맙니다. -_-;

    (사소한 지적으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 이아니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즉, 믿음이 우리가 믿는 것의 실체를 제공해준다는 이야기죠. 아 물론 정상적인 논증방식에서는 개-_-소리 맞습니다. 뭐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대상이 있다고 주장하는 판에 이 정도는 애교로 -_-)
  • 서초3동천재소년 2014/07/21 14:26 #

    충고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 조심할게요......

    사실 말씀하신 부분에 거의 모두 동의해요 ㅎㅎ 결국 대안 비슷하게 내놓은 초인 역시 다른 의미에서의 공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겠죠. 니체 자신도 말했듯 초인은 아직까지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니체가 폭로하고 싶었던 것은 기독교의 허구성을 넘어서서 허구를 그려낼 수밖에 없었던 나약함이었던 것 같아요. 위 본문에서는 그게 잘 안 드러나는군요.... 그런 의미에서 4번과 5번에는 이견이 없고, 고자라는 디스도 니체적 맥락에서 기독교를 디스하는 적절한 말인 것 같아요 ㅋㅋㅋㅋ 적절함! 다만 니체가 자신과 기독교의 차이를 사유가 비롯한 욕망의 종류차이로 한정하는 걸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 같아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말씀해주신 방식이 니체의 극딜을 피해가기에 충분히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 서초3동천재소년 2014/07/21 14:27 #

    아 그리고 '바라는 것들의 확신'은 새번역에 그렇게 나와있길래....ㅋㅋㅋㅋㅋㅋ 새번역을 좋아해서요
  • 긁적 2014/07/21 14:41 #

    헐. 새번역에는 확신으로 되어있군요. 저도 새번역 좋아하는데 왜 이런 실수를 ;ㅁ;.... KJV 에는 'substance'라고 되어있고 NIV에는 'confidence'라고 되어있는 것을 보면 이 경우에는 '확신'보다는 좀 더 증거력이 있는 걸 쓰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늅늅하게 놀다가 네링님이 헬라어 원문을 들고 나타나시는데...)

    그렇죠. 니체 입장에서 욕망의 차이가 전부는 아닐 겁니다. 자세한 건 니체형님 말씀을 좀 더 들어봐야되는데 좀 빡세서 ;ㅁ;...
  • 지나가다가^^ 2014/07/21 21:27 # 삭제 답글

    글 잘 읽고 갑니다.

    그리고 한가지 정정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일반적으로는 실상이라고 하죠)은 바울의 주장이 아니라고 알려져 있어요.
    히브리서는 신약 성경중에 몇 안되는 작자 미상의 책으로, 확연히 그 문체와 내용, 배경, 논지 전개 방식 등등에 있어 이전의 바울 서신과 많이 다른 것으로 보아
    바울이 저자가 아닐 확률이 매우 크니까요
  • 서초3동천재소년 2014/07/22 17:16 #

    앗 정말그렇네요! 정정 감사합니다~ 한 수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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