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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안티크리스트』읽기 - 제 25절 '역사' └『안티크리스트』읽기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자연적 가치들에서 자연성을 박탈해가는 전형적인 역사로서 무한한 가치가 있다.

 

 니체는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논평하고, 이를 통해 유대교적 신과 도덕의 개념에 대한 비판에 이른다. 이 부분은 사실 앞서 『도덕의 계보학』에서 했던 작업의 반복이다. 그 비판의 초점을 한 곳으로 몰았을 뿐이다. 『도덕의 계보학』에서 니체는 서구의 도덕개념에 물음표를 붙인다. 도덕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도덕은 사람답게 살려면 꼭 지켜야 하는 것으로,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어딘가에 분명히 있어서 사람들이 공부해서 그 원래 모습을 밝혀내야만 하는 것으로, 그래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만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윤리학ethics이 하는 일이 바로 그거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단 그 도덕이라는 걸 아무도 본 적이 없다는 데 있다. 도덕을 공부하고 가르치기 위해서는 일단 그 도덕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니체는 그 도덕이라는 게 진짜 있냐고 묻는 셈이다. 그 근거는 이렇다. 도덕의 계보학Genealogie’ 이라는 말에서 보이듯이 니체는 도덕 개념의 출처, 그러니까 도덕이라는 게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추적한다. 이 추적 작업이 『도덕의 계보학』의 내용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사람들이 어떤 행동이 옳다고, 혹은 도덕적이라고 말했을 때 그 이유는 그게 자신의 생존과 성장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살인이 나쁘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게 나의 생명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기도 하기 때문이고 반대로 자선을 칭찬하는 사람들은 구제받는 거지에게 자기의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그 거지가 느끼는 살았다는 감정을 함께 느끼기 때문에 칭찬한다는것이다. 따라서 도덕감정 역시 그렇게 숭고할 게 없으며 단지 살고자 하는 자연적인 의지가 조금 복잡한 방식으로 드러난 것뿐, 그래서 도덕 역시 자연적 본성의 일부라는 주장이다.


여기에서 니체는 결코 도덕을 폄하하는 게 아니다. 도덕이 본능으로부터 온 것임을 폭로하고 있지만 그러면서 오히려 그 본성의 건강함을 높이 평가한다. 앞서 말했듯 모든 생명은 본능적으로 살아남아서 힘을 키우려 하고, 도덕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는 그 본성을 충실히 구현하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종교 역시 그런 본성의 표출이라고본다. 농사꾼들이 기우제를 지내는 것, 죽은 조상들에게 (잘 봐달라고) 제사를 지내는 것,전쟁에 나가기 전에 이기게 해달라고 제물을 바치는 것, 그리고 그 밖의 종교적인 행위들 모두가 사실은 앞서 말했던 힘에의 의지의 표현이며 건강한 생명으로서의 징표인 것이다. 니체에게 있어 이기적이라는 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원래 생명체는 다 그러니까, 오히려 그 반대가 병든 것이라는 주장이다. 니체는 이스라엘과 유대교가 초반부에는 이러한, 그러니까 니체적 의미에서 건강한모습을 띄고 있었다고 해석한다.

 

이스라엘도 본래는 특히 왕조시대에는 만사와 올바른 관계를, 다시 말해 자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들의 야훼는 [그들 자신이 갖는] 힘 의식의 표현이었고 그들 자신에 대한 기쁨, 그들 자신에 대한 희망의 표현이었다. 야훼를 통해 그들은 승리를 거두고 구원을 얻을 것을 기대했으며 야훼에 의지하면서 그들은 또한 자연이 그들 민족이 필요로 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비를-내려주리라고 믿었다. 야훼는 이스라엘 민족의 신이며 그러한 이유로 정의의 신이다. (…) 이민족은 그들의 가장 큰 소망으로서 훌륭한 군인이기도 하고 정의로운 심판자이기도 한 왕에 대한 비전(Vision)을견지하고 있었다.

 

유대교가 갓 만들어졌을 때, 그러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로부터 도망쳐 나와서 광야를 헤맬 때, 모세가 시내 산에서 받아온 계명에 따라 율법이 정해지고 제사가 드려지며 제사장 계급(, 레위 지파)이 공식적으로 생겨났을 때, 그 때 그 분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이었다. 그 분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에 따라 그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고, 그 약속에 따라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 그 분이 모든민족의 신, 즉 유대인과 이방 민족 모두의 하나님이 되신 것은 분명히 시간적으로는 이 때보다 나중이다. 니체의 주장은 이것이다. 그러니까 이 때에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이었으며,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승리를 약속하시는 분이었다. 이는 이집트로부터의 독립과 가나안에서의 승리, 그리고 생존을 원하던 당시 이스라엘의 민족적 정서를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었다. ‘따라서그분이 이스라엘 민족의 신이 되었으며, (모든 사람은 자기의 성장과 생존에 이로운 것에 정의라는 이름을 붙이므로) 동시에 정의의 신이 되었다.


그러니까 니체는 여기에서 유대교나 기독교의 교리를 논하는 게 아니라, 그 종교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왜 거기에 속해 있었는가를 묻는 셈이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요새 말로 하자면, 종교를 통해서 사람들은 자기의 욕망을 객관화하고 정당화하기 때문이라는 것, 말하자면 자기가 바라는 바를 신의 이름으로 혹은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해서 합리화하는 한편 신의 도우심을 가정함으로써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분석은 충분히 현대적인 것 같다. 이는 19세기 유럽의 기독교에 던져진 물음이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도 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게 있다. 선거시즌이 되면 교회에서도 정치 얘기를 열심히 한다. 재밌는 건 1번을찍는 사람과 2번을 찍는 사람 모두 자기 입장을 성경적으로정당화하려고 하며, 또 대부분 성공한다는 점이다. 니체는 여기서 하나님은 1번과 2번 중 어느 쪽을 찍기 바라시는가?’를 묻지 않는다. 그보다 양 쪽 모두 자기 입장을 주장하면서 성경을 끌어들인다는 점에 착안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기에서) 신의 이름은 다만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는 출구이다.” 더 멋있게 말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내용은 그럴 것이다. 정치적 입장은 이미 정해져 있다. 거기에 하나님과 성경을 끌어들이는 심리는 대개 성경에 자기 견해를 맞추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그 견해에 맞는 성경 해석만을 끌어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무 희망도 성취되지 않았으며, 과거의 신은 이제 그가 예전에 할 수 있었던 일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차라리] 그 신을 버리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사람들은 신의 개념을 바꾸어버렸다. –사람들은 그것에서 자연성을 박탈해버렸다. 이러한 대가를 치르면서도 사람들은 야훼에 집착했던 것이다. ‘정의의 신인 야훼 그는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가 아니었고 민족적인 자부심의 표현이 아니었으며 일정한 조건에 구속된 신에 불과하게 되었다. …… 신이란 개념은 이제 사제 선동가들의 손아귀에 놓인 하나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 선동가들은 이제 모든 행복을 일종의 보상으로 해석하고 모든 불행은 신을 불복종한 데 따른 벌, 에 대한 벌로 해석한다. 이것이 바로 원인결과’’라는 자연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 이른바 도덕적 세계질서를 내세우는 가장 기만적인 해석 방식이다.

 

되도록 인용은 짧게 하려고 하는데 여기는 생각보다 복잡해서 짧게가 잘 안 된다. 어쨌든, 초기 유대교의 모습은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당하고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기존의 민족신 개념을 변형시킬 수 밖에 없었다고 니체는 주장한다. 그분의 약속과 다르게 이스라엘 민족이 패배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부조리가 사람들에게 멘붕을 선사했고, 멘붕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이유를 찾아내야만 했으며, 그 결과 의 개념에 도달했다.모든 불행의 원인을 죄로 돌린 것이다. 열왕기에 줄창 나오는 왕들에 대한 평가는 이런 맥락위에 있다. 열왕기에서는 이스라엘 왕국의 모든 왕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통치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평가한다. 그게 유일한 기준이다. 이를 통해 이전의 왕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많이 거슬렀는지,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얼마나 '망할 만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쓰여진 시기는 언제냐 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 왕국에 포로로 잡혀갔던 그 때다. 이 두 사실을 종합하면 열왕기서의 목적을 유추할 수 있다. 이는 그들이 마주친 거대한 부조리, 즉 이스라엘의 멸망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작업이었던 것이다. 니체는 이 때, 이로부터 죄 개념이 발명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까 죄는 (원래 있었던 걸 발견한 게 아니라),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어떻게든 설명해내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차차 풀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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