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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초3동천재소년


니체,『안티크리스트』읽기 - 제 50절 '은혜' └『안티크리스트』읽기

 

 교회에 은혜만큼이나 아리까리하면서도 자주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이 은혜라는건 참 흔하면서 동시에 그 뜻이 분명하지 않은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은혜라는 말은 은혜받았다’, ‘은혜로 ~를 하다’, ‘하나님의 은혜로에서부터 오직 은혜sola gratia’에 이르기까지, 그러니까 일상에서부터 신학적 논증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맥락에서 쓰이지만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마땅한 대답이 없다. 내가 보기엔 뭔가 잘 모르겠지만 좋은 것, 내가 얻어낸게 아니라 주어진 것, 뚝 떨어진 것, ‘운이 좋았다고만 말하기에는 무언가 신성하고 거룩해 뵈는 것을 가리킬 때 은혜라는 말을 쓰는 것 같다. , 물론 그 밖의 쓰임이 없는 게 아니다. 아마 쓰는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많이 있을 것이다.

 

 은혜는 어쨌든 교회에서 쓰는 말인 바 대개 감사와 관련되며, ‘하나님으로부터 나에게 온 무언가를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니까 좋은 무언가가 하늘로부터 나한테로 뚝 떨어지면 그게 은혜에 의한것이고, 내가 벌어서 얻어낸 게 아니므로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가 된다. 이 설명은 어디에나 쓰일 수 있다. 애초에 우리가 빈 손으로 왔음을 상기하면 우리의 능력과 재산을 포함하여 모든 것은 다 주어진 것이 되고 따라서 모든 게 다 은혜일 수 있게 된다.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우리는 늘 어떤 것을 은혜로 지칭한다. 그러니까 은혜로 받은 무언가를 두고 거기에 감사한다. 모든 게 은혜지, ,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우리의 심리는 은혜로 주어진무언가와 당연하게 주어진다른 것들을 나누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은혜로 주어진 그 무엇인가를 다른 것들로부터 구별해낼 수 있게 된다. 이 구별짓기는 주어진 좋은 것의 배후에서 그 원천, 주어진 것을 준 분을 찾고자 하는 심리로부터 비롯한다. 그리고 그것을 은혜로 규정지으면서 그 사람은 은혜인 그 것을 넘어 그 이면에서 그 분을 발견하고, ‘그 것을 통해서 그 분의 존재를 확증한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그 분은 나에게 이토록 좋은 것을 주신 분이며, 눈앞의 이 좋은 것을 통해서 그 분의 존재를 더욱 확고하게 믿는 데 다다르게 된다.

 

 니체는 이걸 효력에 의한 증명이라고 부른다. 이 증명은 그 분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전제한다. 그 분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이 좋은 것이 그 분으로부터 온 것일 수 있다. 일종의 약속 같은 것이다. 그 약속을 믿을 때 비로소 눈앞의 이 좋은 것이 약속의 성취일 수 있게 된다. 니체의 불만은 이 두 개, 약속과 약속의 성취로서 주어진 그 것모두가 모두 약속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있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믿으면 복을 받는다.따라서 신앙은 참되다는 것이다. - 이 경우 우리는 우선, 이 복을 받는다는 것은 입증된 것이 아니고 약속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해도 될것이다. 다시 말해 복을 받는다는 것은 믿어야 한다는 조건에 매여 있으며, 사람들은 믿기 때문에 장차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 그러나 아무도 검증할 수 없는 피안에 관해 사제가 신도에게 약속하는것이 실제로 이루어진다고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 따라서 소위 효력에 의한 증명이란 사실상 믿음을 조건으로 약속한 결과가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것에 대한 또 하나의 신앙에 불과하다. 정식화하면 이렇다. ‘나는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것을 믿는다. – 따라서 믿음은 참되다이다. –

 

 그러니까 이런 거다. 추합으로 대학에 붙었으면 그게 정말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도, 나님의 원서질이 먹혔다고 할 수도, 평소에 착하게 살아서 복받은 거라고 할 수도 있다. 무언가를 은혜라고 말하던, 내가 싸워 얻어낸 거라고 말하던, 아니면 그냥 운이 좋았다고 말하던, 일단 그게 있다는 것까지는 똑같다. 문제는 말하는 그 사람이 그것의 있음으로부터 무엇을 보느냐는 거다. 믿음이 깊은 신자는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와 날 향한 계획을 볼 거고, 을 통해 믿음이 더 깊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애초에 믿음이 없었던 사람은 하나님 같은 걸 못 볼 것이고 따라서 믿음이 더 생겨나지도 않을 것이다. 앞의 사람은 대학에 붙었다는 그 사실이 은혜고 기도응답이며 따라서 믿음이 참되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니체는 그것 역시 또 다른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따라서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인가? 대학에 붙은 건 은혜였는가, 우연이었는가? 그건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대학에 붙었다는 사실 뿐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사실에 무슨 의미가있는지는 객관적으로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건 사실을 바라보는 사람이 만들어내야 한다. 이 점에서는 둘이 똑같다. 우연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전적으로 객관적인태도는 아니다. 우연이라는건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그렇게 되었다는 건데, ‘이유가 없다는 것 역시 공짜로 입증되지는 않는다. 이유가 없다는게 유일하게 참인 입장이기 위해서는 이유 없음역시 증명해내야한다. 그건 불가능하다.

 

 은혜에 대해 보다 급진적인 주장이 하나 더 있다.

 

그러나 조금 양보해서,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사실이 (단순히 희구되고, 사제의 미심쩍은 입으로 단순히 약속된 것에 그치지 않고) 입증되었다고 하자. 그 경우 복 받은 상태[지복의 상태]더 전문적으로 말해서 쾌감Lust일찍이 진리의 증거인 적이 있었던가?

 

 은혜라는 말이 잘 쓰이는 상황 중에서 기도회를 빼놓을 수 없다. 교회에서의 기도회는 대개 어두운 조명 아래 요란한 반주를 동반한 채 이루어지는데, 이 상황이야말로 젊은 기독청년들이 종교적 열광을 분출하며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 중 하나이다. 안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에서 제일 질색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평소에는 멀쩡하고 조용하던 친구들이 갑자기 헤드뱅잉을 하며 사이키델릭한 암구어를 중얼대는 걸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충격은 굉장하다. 어쨌든 기도회니깐 눈을 감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감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채로 그것들을 겪게 되는데, 어쨌든 무섭다.

 

 거기에는 묘한 황홀경이 있다(겪어서 아는건 아니다). 인류가 아주 옛날부터 종교를 통해서 겪어온 어떤 몰아의 체험이랄까, 나의 실존이 지워지는 경험이랄까, 하여튼 그런 게 있다. 과학에 찌든 현대인은 이미 잃어버렸지만 그거야말로 인류가 본연적으로 갈구해온 상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거, 옛날에는 접신接神이라고도 했고 탈아ecstasy라고도 하는 이 오묘한 상태, 나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같은 그런 상태, 이 상태는 아주 옛날부터 진리를 얻는 통로였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내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 내 안에 나 아닌 존재가 하는 말을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탁이라고 불렀고, 근동에서는 선지자의 예언이라고 불렀고, 동방에서는 신내림이라고 불렀다. 그건 그 자체로 진리였다. 증명할 수도 없었고 증명이 필요치도 않았다.

 

 좀더 포괄적으로, 그 체험이 어떤 말을 하는 단계까지는 아니고 주관적인 느낌에 머무르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무언가, 나에게 없었던 기분이 갑자기 충만해지는 그런 느낌, 지금 교회에서는 그것도 은혜라고 부른다. 주관적으로, 내면적으로 소화된 기도회의 열광도 은혜. 그 은혜의 상태에서 주어진(혹은 떠오른) 말들은 그 자신이나 그가 속한 공동체에 있어 굉장한 권위를 갖는다. 그건 은혜고, 은혜는 더 높은 곳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역시 증명이 필요 없다. 신탁은 원래 불친절한 법이다. 또 그건 전적으로 주관적인 느낌이라 뭐라고 할 수도 없다. 그 느낌과 함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 그건 곧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된다. 진지한 표정으로 "하나님이 나한테 이렇게 말씀하셨어"라고 하면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나 있을 뿐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는 데 뭘 어쩌겠는가. 

 

 니체는 묻는다. 느낌이 진리를 증언할 수 있는가? 북받치는 그 감정이 다른 무엇도 아니라 바로 그 분으로부터 왔다는 걸 어떻게 확증할 텐가? 그 메세지가 진짜 그 분으로부터 왔다는 건, 한갓된 뇌내의 부유물이 결코 아니라는 건 또 어떻게 증명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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