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로그

서초3동천재소년의 철학공작소

SC3GENIUS.egloos.com

진실은 쓰다. 쓴 진실을, 쓰다.
by 서초3동천재소년


니체,『안티크리스트』읽기 - 우리 └『안티크리스트』읽기

 끝났다. 내가 보기에 지금 우리의 맥락에 맞댈 수 있는 내용은 얼추 다 본 것 같다. 얘기했던 것 말고도 니체가 불교에 대해 길게 말했던 부분도 있고, 당시 독일 기독교계를 신명나게 디스하던 데도 있고, 또 예수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했던 데도 있었는데 너무 글이 길어질까봐서 뺐다. 처음에 열 편정도 쓰겠다고했는데 딱 열 편, 인트로까지 합치면 열한 편이 나왔다. 이래서 글을 쓸 때에는 처음에 끝을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것 같다. 끝을 생각해놓고 있으면 어느새 거기에 맞춰서 생각을 하게 된다. A4로 한 장을 쓰려고 하면 더 길게 뽑을 수 있는 주제도 딱 그만큼, 더 써도 그보다 약간 더 쓰는 선에서 멈추게 된다. 캔버스 테두리를 쳐놓고 그림을 그리면 그 네모 밖으로는 붓이 나가지 않는 것처럼, 미리 한계를 정해놓으면 생각으로 거기를 넘어가기가 좀 힘들어진다. 앞으로는 무작정 써야겠다.


 사실 이런 걸 하려던 건 아니었다. 방학인데 고작 오천 원씩에 내 인생을 팔아넘기기는 싫어서 작정하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헤겔을 빌리려고 갔던 도서관에서 『안티크리스트』의 새 번역을 우연히 봤고, 온 김에 같이 빌려다가 헤겔 전에 후루룩 읽고 시작하려던 게 벌써 8월이 됐다. , 확실히 읽은 걸 글로 다시 써보는 게 공부하는 데 참 많은 도움이 된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글로 차분히 다시 써보면 말도 안 되는 게 있고, 그걸 바로잡으면서 기억에도 더 오래 남는것 같다. 그리고 나중에 필요할 때 금방 찾아볼 수도 있고, 비슷한걸 궁금해하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들을 수 있어서 재미있다. 앞으로도 공부한 걸 다시 내 말로 풀어서써봐야겠다. 어떤 방식으로든.


 끝으로 이제까지 얘기했던 것들의 결론 같은 걸 내보고 싶었는데, 안 그래도 될 것 같다. 니체는 계속해서 기독교를 고발하고 있고, 나는 니체 뒤에 숨어서 슬쩍 내 얘기, 우리 얘기를 했다. 그렇지만 아직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검사가 아무리 신명나게 고발을 한다 해도 판결을 내려줄 판사와 그걸 집행해줄 공권력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랴. 지금 우리의 교회도 비슷하다. 안팎에서 교회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사람은 천지빼까린데 그걸 듣고 수렴해줄 사람이나 그 방향으로 교회를 캐리해줄 사람은 없거나 매우 적다. 비판은 입만 있으면 할 수 있으나 그대로 실천하는 데에는 굉장한 몸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시간과 정력을 소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꽉 막힌 꼰대를 설득하면서 마냥 신나있는 천둥벌거숭이들을 가르치며 비슷한 이유로 지쳐있고 날카로워진 동료들을추스르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경건도 유지하면서, 월요일부터는 주말에 푹 쉬고 돌아온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늘 위기, 만성적으로위기이나 그게 일선의 나 같은 병졸한테까지 느껴질 정도면 그 정도가 꽤나 심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결론내기가 마뜩찮다. 결론은 글이 아니라 현실에서 날 것이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바빌론 유수로 결론지어졌듯, 혹은 구약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듯.


 니체를 끌어들였지만 난 우리 교회 얘기를 하고 싶었다.우리의 신앙이 어떤 말, 어떤 경험을 재료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분석하고 싶었고, 그 질료적 특성으로 인해 우리의 신앙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어떤 틀 안에 담기게 되었는지를 보면서 그 틀 바깥을 넘겨다보고 싶었다. 원래 아주 잘 된 로컬이 곧 글로벌이 된다고 하지 않았나. 우리는 전국구 철학자로 아는 칸트나 헤겔도 당시 독일 사상계가, 그 자신이 당면한 문제에서부터 시작했고, 그게 쌓이고 쌓여서 주류이며 표준이 되었다. 남의 문제를 연구했으면 아마 그렇게까지 지독하게 매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진짜를 말하려면 우리의 문제에 대한 해결, 우리 시대의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가 가진 체험과 교훈부터 제대로 소화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철학을 통해 그게 가능하다면 철학은 여전히 쓸모가 있다. 아직까지 니체로부터 배울 게 남아있으니 니체를 읽는 게 무의미하지는 않은 셈이다. 철학의 쓸모는 이렇게, 철학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철학은 늘 무엇인가를 말하는 중이다. 그걸 들을지 말지, 읽고 욕할 지 안 읽고 욕할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난 안읽고 욕하기에는 마음 한 구석이 켕기기 때문에 철학을 한다. 욕만 하는 건 비겁하다. 애초에 욕만 할 사람들은 내 글을 쳐다도 보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말하는 게 사실 별 의미는 없다. 생각하기는 귀찮지만 잘난척은 하고싶은 게 요즘 유행이요, 자기가 모르는 말을 하면 바보취급부터 하는게 요즘 버르장머리인듯 하다. 그것까지도 참아주고 골고다까지 캐리하는 게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이라고는 들었지만, 글쎄, 할 수 있을까 싶다. 가끔 벽에다 대고 말하는 게 차라리 덜 답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블로그에다 대고 쓰는 걸 보니 확실히 그런 것 같다. 교회에 기대하는 상식과 양심의 수준을 계속 조금씩 낮춰가는 중이나 그마저도 늘 실망으로 돌아오곤 한다. 


왠지 내가 한 십년 쯤 후 새누리당에 가있을 듯한 예감이 든다. 


덧글

  • 명근 2014/08/01 21:14 # 삭제 답글

    새누리당에 온 걸 환영하네 친구
  • 서초3동천재소년 2014/08/03 20:20 #

    아아.......... ㅋㅋㅋㅋㅋㅋㅋㅋ
  • 2014/08/19 10: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즐거운편지 2014/09/05 00:54 # 답글

    꾸준히 인문사회밸에 글을 올리시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잘 읽지는 않았습니다. 끝내면서 올리신 이 소회를 보면서 개신교인의 한 사람으로 답글을 안 남길 수가 없어서 덧글 남기고 갑니다. 니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므로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주인장께서 말씀하신대로 종교라는 것, 특히 니체의 공격대상이였던 기독교의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기에 단순히 내세의 일이나 추상적인 일이 아니라 현세적이고 구체적인 일이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규범적인 교리나 어떤 hierarchy에서 오는 사도좌의 권위와 같은 외적 권위가 아니라, 종교 안에서 살아 움직이며 그 종교를 믿고 싶게 만드는 내적 권위라 봅니다.

    제물포에 언더우드 선교사가 들어오고 했던 기도가, 130여년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 프로테스탄티즘의 현주소는 자기의 규범 자체에 대해 프로테스탄트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 규범이 엄격한 사회 규율을 가지던 7080년대, 우리나라는 90년대까지만 해도, 금주금연, 십일조, 주일성수였다면 세상이 오늘날 개신교에게 물어보는 것은 동성애, 사형제도, 안락사 문제와 같은 '케이스'들을 물어보고있지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사랑을'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많은 논쟁의 여지를 남길지라도 자신들의 규범적인 교리 및 교회법과, 그리스도라는 본질은 구분되어야 하며, 그 분리된 터전 위에서 오늘날의 상태에 맞게 다시금 내적 혁명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입니다.

    작년에 대학교회 예배에 갔을 때, 20대 개신교인 비율이 2.5%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대갈등이 강한 이 나라에서 제 생각에 개신교라는 것은, 어른들을 특징지을 수 있는 종교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즐거운편지 2014/09/05 01:01 #

    그리고 뉴스비평밸리 글도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올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어쨌거나 링크 신고합니다.
  • 서초3동천재소년 2014/09/06 14:21 #

    넵 답글감사합니다! 남겨주신 글 읽고 저도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말씀해주신대로 많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ㅎㅎㅎ 그부분도 조금씩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한국교회를 향해 해주신 말씀에 대개 동의합니다. 남겨주신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다시 한번 새겨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