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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쓰다. 쓴 진실을, 쓰다.
by 서초3동천재소년


[교회 내 민주주의론] 1. 이론 └Christianity NOW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이제는 자못 공허한 구호로 들리기도 하나 이 말은 여전히 무시해버릴 수 없는 힘을 갖고 있다. 현실이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하여 이 말의 가치가 덜어질 수 없다. 오히려 그럴 때 이 말은 당위로서, 요구로서, 권리 주장으로서 그 빛깔을 더욱 선연히 드러낼 것이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되어야 한다.



 

 교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에 대해 길고 지리한 이념 논쟁이 있었던 줄 안다. 지금 우리가 가진 답도 완전할 리 없으며 앞으로 끝없는 절차탁마를 거쳐야 할 것이다. 2014년이 저물어가는 지금 즈음에 우리의 시대정신이 말하는 바는, 어쨌든 그게 사역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프로테스탄트는 중세 말엽 교황 이하 사제 권력과 투쟁함으로써그 법통을 시작했던 바 있다. 또한 20세기 중엽 국가주의와 군국주의가 창궐하던 때엔 정치권력과 투쟁함으로 명맥을 이어나가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의 프로테스탄트는 무엇에 저항(protest)하는가? 교황의 전제주의와는 이미 이혼한 지 오래다. 국가 권력에는 재갈이 물려져 이제는 교회를 위협하지 못하게 되었다. 교회는 이제 교회 바깥의 무엇과 싸우지 않는다. 교회는 이제 현대문화를 이루는 수많은 부분 중의 하나로 포섭되었다. 성경의 가르침이 시민적 도덕과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혹은 그렇게 해석되고), 기독교인들은 협회의 이름으로 보도자료를 내며시민사회에서 다른 가치들과 경쟁하기 시작했다. 현대의 교회는 현대의 시민사회와 불화하지 않는다. 예수는 내란음모죄로 사형에 처해졌지만 현대 기독교에서 그런 인물은 좀처럼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는 교회의 투쟁 대상, 지양止揚 대상이 더 이상 교회 밖에 있지 않게 되었음을 뜻한다.

 



 교회는 이제 자기 자신과 투쟁한다. 16세기의 프로테스탄트가 교황권력과 국가권력에 맞서 투쟁함으로써 새로운 교회를 세웠다면 21세기의 프로테스탄트는교회권력과 투쟁함으로써 새로운 교회를 세운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일찍이 가톨릭의 종교적 전제군주제, 즉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제도를 논박했던 바 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교회 역시 사람들이 모이는 조직인 바, 그 안에서 권력관계의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가톨릭이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일반 백성들 사이의 구별을 그대로 자기 안에 이식하여 권력관계화했다면, 프로테스탄트는 신약의 제자공동체를 참조한다. 일찍이 예수는 죽음으로써 신자들 사이의 구별을 폐하였으나 그의 제자들은 예수가 죽자마자 조직을 만들고 위계를 세워 큰 자와 작은 자, 말하는자와 듣는 자, 중심과 변방을 구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제사장과 일반 백성의 구별이 폐해지고 모든 사람이 제사장이 된 다음에는 제사장들 사이의구별이 생겨났다. 이러한 구별짓기는 아직까지도 유효하여 지금의 교회에서도 어떤 사람은 강단 위에 홀로 서고, 어떤 사람은 강단 아래에 무리지어 앉는다. 새로운 길이 열려 모든 사람이 신에게로 직접 갈 수 있게 되자 길을 막고 통행세를 걷던 풍경은 사라졌으나, 이제는 그 길을 바른 길과 그릇된 길로 나누어 길잡이를 자처하며 안내비를 받는 무리가 생겨났다. 이들-안내자 무리는 노동하지 않으면서 향유하고, 선출되지 않았으나 지배한다.


 


  현대의 교회에서 이는 곧 사역자 권력이다. 교회는기본적으로 성경의 가치를 기초로 하는 집단이며 가치규범이 곧 교회의 강령과 실제 생활에서의 행동규범일 것을 주장한다. 여기에서 사역자는 가치의 해석을 점유하며, 이를 통해 교회 운영과 구성원들의 실제 생활에 일정한 권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권력은 교회 구성원의 관념 안에서뿐 아니라 물질적으로 사역자에게 주어지는 사례비를 통해서도 작동하며 또한 강화된다. 사역자의 교회 내 행위는 구성원들과 맺는 관념적 권력관계를 공고히 함과 동시에 사역자에게 물질적인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물질적 토대 또한 제공한다. 중세의 성직자 계급이 그랬던 것과 동일하게 전문 사역자는 노동하지 않으면서 노동의 성과를 향유한다. 또한 교회의 법 해석을 점유함으로써 행정 및 사법적 권력 또한 가진다.

 

 현대의 한국 교회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도리어 그 폐단이 더욱 적나라하다. 한국에서 목사를 견제할 만한 제도를 갖춘 교회는 사실상 매우 드물다. 이에 따라 교회의 영향력이 미치는 사실상 전 범위에 목사의 개인 권력이 개입해 있다. 누구에게도 선출되지 않았으나 모든 사람을 지배하는 셈이다. 이러한 권력으로 말미암아 목사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단일 직업군으로서 가장 범죄율이 높은 직종이 되었다. 목사의 범죄는 수적으로 많을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다양하다. 부정과 배임, 권력남용, 횡령, 투기, 성범죄에 이르기까지 가히 현대 사회에서 가능한 지능 범죄는 모조리 저지를 수 있는 것이 목사다. 이는 교회 안에서 목사가 처한 특유한 지위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현대 한국 교회의 도덕적 추락은 사실상 이러한 권력의 비분립이 수십 년간 이어져온 결과인 것이다.

 


 다시, 그렇다면 교회는 이제 무엇과 투쟁해야 하는가? 21세기의 프로테스탄트는 무엇에 저항하는가? 바로 교회 내부의 전제주의다. 구체적으로는 교회의 사유화 반대, 교회 세습 저지, 교회 내 의사결정의 민주화, 교회 경영의 공공화 등을 말한다. 이를 위해 신학의 보편적 보급, 의사결정권 분점 요구, 교회의 행정정보 공개 등이 요구된다. 어떤 교회에서 이는 목사 개인의 전제권력에 대한 투쟁이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목사와 장로들이 이루는 과두권력에 대한 투쟁이다. 더 작은 단위에서는 사역자와 행정주체들의 관료주의에 대한 투쟁이기도 하다.

 

 무엇을 통해 이를 이룰 것인가? 평신도의 조직된 힘이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므로 교회의 주인은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것도 소수의 장로나 권사가 아니라 교회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자기의 소속 단위에 자치권을 행사할 수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독점된 권력을 나누어야 한다. 결정하는권력이 있다면 이를 감시해야 한다.


 


교회가 망하는 것은 돈이 떨어질 때도, 건물이 없어질 때도 아니다. 돈은 모아서 쓰면 되고 건물은 빌려서 들어갈 수 있으나 그 모든 것은 교회에 사람이 모여있을 때 가능하다. 일찍이 신약의 제자공동체는 다만 예수가 모아놓은 사람들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에는 제도도, 장소도, 공동재산도 없었다. 사람들이 거기 모여있음으로 말미암아 나머지 모든것이 생겨났던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사람들의 모임, 바로 그것이며 교회가 망하는 것은 모이는 사람이 없을 때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있음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따라서 거기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교회의 실체이며, 본체이다. 그래서 교회의 주인은 성도일 수밖에 없다. 모든 성도는 주인으로서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되어야 한다.


덧글

  • 식용달팽이 2014/12/19 23:15 # 답글

    프로테스탄트의 전통을 갖고 있다고 해서 지금도 프로테스탄트일 필요는 없지요. 프로테스탄트가 되어야 할 일에 대해서만 항의하면 됩니다. 저항했기 때문에 그들을 프로테스탄트라 부르기는 했지만, 그들의 정체성은 저항이나 독립이 아닙니다. 마틴 루터나 장 칼뱅이 황제권이나 교황권에 대한 저항을 목적으로 종교개혁을 이끌어 갔다고 본다면, 그건 교회 외적인 기준으로 종교개혁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 내적 기준으로 종교개혁을 바라 보면, 그것은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도 교회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니까요.

    교회는 사람들이 모임으로서 존재하지만, 교회의 주인은 성도가 아닙니다. 교회가 되는 것은 그저 사람들이 모였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모였기에 교회인 것입니다. 결국 예수의 이름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교회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교회의 주인으로서 자기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목사나 장로 권력에의 복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장로는 성도들에 의해 선출된 사람들이고, 목사는 성경에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성도들이 초빙한 성경 강해자입니다. 고로 성도들은 목사나 장로가 잘못한다고 여겼을 때는 목사와 장로를 교회 공동체에서 추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취지 하에 교회법 개정이 진행 중입니다.

    전체 글의 취지에는 크게 공감할 수는 있겠는데, 프로테스탄트이기때문에 저항해야 한다는 순환적인 인식, 성도가 주인이라는 인식은 문제가 있어 보여서 한 마디 하고 지나갑니다.
  • 서초3동천재소년 2014/12/21 13:49 #

    진지하고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논리적인 난점을 잘 짚어주신 것 같습니다.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글의 관점은 기본적으로 종교개혁에서 시작한 '개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누가 그랬었는데, "Reformed church must be reformed" 라구요. 종교개혁의 시대에 가톨릭 교회에 대해 제기되었던 문제가 현대의 개신교 교회에서도 양태만 바뀐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문제의식이었습니다. 교회의 주인(머리?)이 예수 그리스도여야 한다는 데에는 아무런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몸글의 주장은 층위가 약간 다릅니다. 몸글에서는 현실적으로 교회에서 활동하는 주체를 크게 사역자와 평신도 둘로 구분하고, 둘 사이의 권력관계에 대하여 논하고 싶었습니다. 두 주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어야 하지만(당위) 그와 별개로 시공간 안에 존재하는 특정한 인간 집단으로서의 교회를 상정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현실). 그리고 몸글에서 말하는 교회, 사역자+평신도로서의 교회는 거기에 더 가깝구요.

    성도가 목사와 장로를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에도 이견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많은 교회에서 그렇게 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몸글은 그 현실을 이끌어낸 구조적 원인에 대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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