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까지의 논의를 종합하자면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의 ‘죄’ 관념에 반대하고자 했다. 이는 율법(혹은 율법주의)에대한 반대와 성전의식에 대한 반대로 나타났다. 예수가 율법에 반대했던 이유는(혹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율법을 적용하는 방식에 반대했던 이유는) 그것이 죄를 판정하는 근거이자 사람들의 마음 속에 죄의식을 심는 주체였으며 따라서 죄 관념의 현실적인 본체였기 때문이다.예수가 성전의식에 반대했던 이유는 그것이 율법(율법주의)에근거한 죄 관념을 현실에서 표현했으며 또한 강화했기 때문이었다. 예수가 세우고자 했던 ‘새 율법’은 행위가 아니라 동기를, 결과가 아니라 원인을 구속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죄’는 마음 속으로 귀속된다(동기와 원인은 모두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죄’가 기록된 법 조항에 대한 위반이었다면, 예수에게 ‘죄’는 내면의 선한 본성을 거스르는 것, 즉 부도덕함이다. 따라서 유대 전통의 ‘하나님 나라’는 내세의 천국이 아니다(독립된 유대 왕국은 더더욱 아니다). 예수에게 ‘하나님 나라’는 선한 덕목들(정의, 자비, 신의, …)을 회복한 개인의 마음 상태였다. 바리새파 사람들에 대한 비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들의 율법 규정은 너무나 세세해서 사실상 도덕적으로 구별되지 않는(차이가없는) 사항에서까지 사람들을 규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이를 오해했다. 예수는 유대의 전통적인 율법의식을 폐지하고 사람들을 그로부터 해방시키려했으나, 제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단지 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 정도로 여겼다. 바울을 통해 이러한 이해가 체계화되었고 그로부터 기독교가 성립했다. 바울은 유대의 죄 관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예수의 가르침보다 예수의 인격이 중요했다. 바울은 유대 전통의 ‘속죄양’ 위치에 예수의 인격을 대입했고, 그것을 예수가 말한 ‘율법의 완성’이라고 생각(오해)했다.
위의 논의는 18세기에서 19세기 무렵 서구에서 이루어졌던 기독교 비판을 현대적으로 답습 및 재해석한 것이다(그냥 반복했다고도 할 수 있을 만큼 그대로 따온 것이다). 칸트 이후 독일 사상계에서는 이성을 진리의 잣대로 간주하고, 인간의 모든 활동을 이성에 비추어 체계화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이는 헤겔에 이르러 정점에 도달한다). 종교(기독교) 역시 그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이 시대, 그러니까 칸트이후 서구의 (철학적) 기독교 비판은 크게 두 갈래라고 볼수 있다. 하나는 종교를 인간의 도덕적 본성(실천이성)을 표현하고 장려하는 행위로 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로 종교에서 사용하는 표상들에 집중하여 종교를 인간 정신이 유아기에 머무르던 시절의 산물로 치부하는 것이다. 이는 헤겔에서 통일을 이루었으며, 헤겔 사후 각각 헤겔 우파와 헤겔 좌파로 나뉘어서 계승되었다.

어쨌든, 위의 논의는 주로 첫번쨰 입장, 그러니까 종교를 실천이성의 활동으로 보는 관점을 반영한 것이다. 현대 한국 기독교에서는 일단 잘 다루어지지 않고, 가끔 ‘자유주의’라는한 마디로 그냥 죽은 개 취급당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입장에서 예수는 주로 유대의 종교개혁자이자 실천이성의 요구를 꼬박 다 실천한 도덕적 영웅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구속사적 신학, 그러니까 예수의 신적 지위를 강조하고 예수를 구약의 전통에 따른 속죄양이자 종말 때의 심판자로 간주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비판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계속 다루어보려 한다.




덧글
워낙 자유주의라 불리는 그 부류가 지칭하는 예수님의 모델이 많은지라 도덕적 완전체로서의 예수님은 그 중에 편린인 거 같기도 합니다.. 한참 붐이었던 혁명가 예수, 여자 예수, 흑인 예수 등;; 예전에 에코페미니즘을 천명하시던 조직신학 교수님께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어서 자유주의신학 스펙트럼이 정말 넓구나 했지요. 그런 종류의 얘기를 듣고 총신대 다니는 후배들에게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더라 라고 하더니 또 그 아이들의 거품 무는 모습 또한 재미있었습니다. 예전에 구약신학 교수님이 말씀하신, '신학자의 적대감'이라는게 이런 것이구나 했지만요..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