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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초3동천재소년


[대학내일] 구남친의 생각 └외부기고



구남친의 생각

 

자니?” 오늘도 한 번 써 봅니다. 어차피 전송을 누르지는 못할 테지만 공연히 글자나마 만들어 보는 것은 여전한 미련 때문이겠지요. 자느냐고 묻는 건 당신이 자고 있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묻는 건 나도 잠들지 못함을 당신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 나는 생각 속에서 매일 밤 당신에게 말을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잠자코 들어주다가, 때로 웃어주다가, 찌푸렸다가, 화를 내는 듯 했다가,이내 사라집니다. 그러면 나는 다시 홀로 남겨지지요. 당신이 그렇게 사라지고 나면 나는 벽과 책상으로 가로막힌 현실로 퍼뜩 돌아옵니다. 그 때마다 당신이 참 그립습니다. 그리워서 카톡을 열어 당신의 이름을 찾고, 바뀐 프사를 공연히 한번 눌러보고, 용기내어 한 마디 적어보지만 여전히 보내지는 못합니다.이 시간에, 이런 감정을 적어 보내는 건 당신이 그렇게 질색하던 구남친의 모습임을 스스로 알기 때문입니다. 새벽 공기에 북받쳐 부재중 통화라도 남겨버리면 큰일이니까요. 내일 아침 당신이 간밤 내가 남긴 한 줄 때문에 행여 불쾌해질까, 나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지만 나는 아직도 당신의 소식을 봅니다.뉴스피드가 챙겨 주지 않으니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검색해 찾습니다. 이때마다 훔쳐보는것 같아 괜히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면서 혹여 누가 엿볼까 핸드폰을 감추며 누르게 됩니다. 거기에는 더이상 내 것이 아닌 당신이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참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그 공간은 이미 당신을 위로하고, 한 편으로 환영하는 인파로 가득합니다. 나도 모르게 그 글줄들을 따라 읽다 보면 나는 참 한강변에 나타난 괴물이 된 기분이 듭니다. 내가 나타나지 말았어야 할 곳에나타난 것 같습니다. 거기에서 나는 당신을 오로지 아프게 하고, 슬프게한 나쁜 사람이니까요. 물론 그 말이 옳습니다. 그렇지만 꽤나 길고 구구절절했던 우리의 이야기가 몇 줄로 압착되어 술자리에서 안주로 씹히는 것, 당신의 사랑했던 사람이 애초에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았던그저 그런 옛사람이 되어 팔려나가는 것만은 마음이 아픕니다.


당신은 참 이런 걸 싫어했는데, 알면서도 어느새 당신이 싫어했던 모든 걸 모두 다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이 시간에 당신을 떠올리는 것부터가 질척대는 구남친의 모습에 잘 어울리지요. 그나마 반쯤 사라진 채 당신 앞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나의 용기없음 때문입니다. 당신을 붙잡아올 만큼 용감하지 못하면서 당신을 미워할 만큼 모질지도 못해서, 나는 당신을 잡지도 놓지도 못합니다. 내 마음은 마치 유통기한을 하루 넘긴 우유같이 삼키기에도, 쏟아버리기에도 애매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나쁜 사람인 내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까요그저 밤이니 잠자리에 들었는지나 물을 뿐입니다.


자느냐고 묻는 말은 당신이 자고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바람은 그것을 바라는 내가 자고 있지 않기에 생겨납니다. 당신은 자느냐고 물으면서 나는 잠들지 못합니다. 이는 당신의 해사한 얼굴이 아직 나를 놓아주지 않은 까닭입니다. 나는 참 아직도 당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밤이 오면 남은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와 마음을 짜게 적시곤 합니다. 그러면 나는 어김없이 감정의 과잉에 휩쓸려 당신을 생각하다, 생각하다조금씩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밀려 갑니다. 거기에서 당신을 다시만나고, 다시 시작하고, 다시 사랑하다, 다시 헤어지는 상상으로 밤을 보냅니다.


행여 어느 날 내가 감정을 잘 담아두지 못해 당신이 자고 있는지를 물어보더라도 나를 너무 미워하지말아 주기를 바랍니다. 몇 안 되는 자음과 모음 사이마다 묻어있는 머뭇댐과 망설임, 쥐어짜낸 용기를 가상히 여겨 주기를 바랍니다. 나는 아직 사라지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이제 당신에게는 별다르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당신이 그것을 알아 주기를바랍니다.


어디에서든 당신이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이 한 마디가 왜 이리도 어려울까요. 오늘 밤도 나는 당신을 잃어버리지 못하고 도로 주머니에 넣어 둡니다. 운을 띄우지는 못하고, 생각만으로 지새우는 밤이 참 길게 느껴집니다.


당신의 구남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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